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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사면 면지에 기록을 남겨 놓은 습관이 있어 쓴 글을 읽어보았다. 2005년 2월 18일이었다. “머리를 검게 물을 들이고 눈비 내리는 날 길을 걸었다. 백화점에 전시된 분홍빛 꽃은 계절은 너무나 대조를 이루고 있다. 서점에 들렀다. 백석의 시집과 29회 이상문학상을 받은 한강의 몽고반점을 집어 들었다.”라고 기록이 되어 있다. 그날 눈비가 내렸나 보다 어찌 19년 전의 일상을 기억할 수가 있겠는가? 오래전 기억은 줄거리마저 가물거리지만, 한강의 소설은 충분히 충격이었다. ‘약간 멍이 든 듯도 한, 연한 초록빛의 분명한 몽고반점이었다. 그것이 태교의 것, 진화 전의 것, 혹은 광합성의 흔적 같은 것을, 연상시키는 것을,’ 그 문장은 오래되어도 지워지지 않았으며 몽고반점만 들어도 한강의 소설이 생각났다.
몽고반점과 같이하는 채식주의자 소설도 경이로웠던 기억이 있다. 채식주의자 소설이 맨부커상을 받을 때 인터뷰를 보면서 그녀의 작품 세계를 조금이나마 접근할 수 있었다. 한강은 채식주의자 인터뷰에서 글을 쓰지 않을 때 작가라는 말을 들을 때 부끄러웠다고 한다. 누구나 글을 쓰는 사람이면 그런 생각을 할 것이다. 필자도 마찬가지다. 한 줄이라도 글을 써봄으로써 작가라는 언어에 가슴이 몽글몽글하게 부풀어 오르는 벅차오름도 있지만, 때로는 글 언저리에 돌고만 있는 모습이 부끄러워 글을 쓴다는 것이 부끄러울 때도 있었다.
한강의 노벨문학상 수상 소감이 SNS를 타고 축하 마당이 펼쳐진다. 그러고 보니 재작년에 벗의 집에서 한강의 ‘소년이 온다.’라는 책을 보았다. 어느 날부터인가 소설은 내 삶에서 사라져 버리고 강의를 위한 책을 사 들고 오늘도 어떤 이야기를 풀 것인가 고민하면서 소설은 자연스럽게 멀리했다. 난 책에 대한 소유가 강하다. 벗이 스몰 삶을 위해 읽었으니 가져도 된다는 말에 “소년이 온다.” 에필로그를 읽으면서 많이 울었다. 한강과 나의 기억이 맞닿은 것은 없다. 다만 학창시절 교수님께서 한승원 작가가 동신중 선생님이었다는 것. 그녀 이전에 한승원 작가의 소설을 읽었다는 것, 장흥에 들려 한승원 작가의 토굴을 방문했다는 것, 부녀가 이상문학상 수상자라는 것을 알고 있다는 것이다. 다만, 작가가 중흥동에 살았던 기억은 나와 같은 장소에 살았다는 공통점이었다. 소설에서 나오는 금남로, 상무대, 중흥동은 세월의 변화가 있지만, 광주의 이야기를 전 세계가 문학으로 만나고 공유한다는 사실에 감격스러웠다. 페북에 올라온 축하 글에 필자의 댓글은 “이제 광주는 세계인의 도시가 되었다.”였다. 광주의 80년 오월과 아시아 문화전당의 이야기는 세계인의 이야기가 된 것이다.
안데르센의 인어공주를 보기 위해 그 먼 나라를 여행했던 순간이 떠올려진다. 코펜하겐에서 배를 타고 본 인어공주 동상에서 많은 사람이 사진을 찍으며 기다리는 모습을 보면서 우리나라도 세계인의 작가가 나왔으면 하는 생각을 해 보았다. 한강의 ‘소년이 온다.’ 소설의 언어는 전라도의 언어가 질퍽하게 자리 잡고 있다. 전라도의 언어는 세계의 언어가 된 것이다. 순간, 가슴이 울컥하면서 눈물이 흐르는 것은 광주인은 가슴속에 80년 5월의 아픈 역사를 안고 살아가기 때문이다.
한강 작가는 노벨상 발표 시간쯤에 다른 사람에게 전화를 받고 알았다고 한다. 한국 최초의 노벨문학상 수상자다. 어떤 기분인가? 질문에 “나는 책과 함께 성장했다. 번역서뿐만 아니라 한국어로 된 책들을 읽으며 자랐고, 내가 느끼기에 나는 한국문학과 함께 자랐다고 할 수 있다. 이번 소식이 한국문학 독자들과 이를 이끌어나가는 내 친구 작가들을 위해서도 좋은 일이길 바란다.”라는 그녀의 언어가 깊은 울림으로 들린다. 19년 전에 만났던 몽고반점은 소년이 온다. 꽃을 피웠다.
소년이 온다. 소설 마지막 부분이다. “엄마아, 저기 밝은데는 꽃도 많이 폈네. 왜 캄캄한 데로 가아. 저쪽으로 가, 꽃 핀 쪽으로” 광주의 오월은 긴 터널을 지나 꽃으로 승화되었으며, 한강 작가도 세계인의 꽃으로 피어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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