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 명 화 교육학박사·동화작가

푸른 하늘에 하얀 두둥실 떠 있는 구름을 보니 가을이다. 햇살을 한 손으로 쥐어본다. 그리고 가을의 전설을 알리기 위해 서울에 있는 벗과 이야기를 하다가 그녀가 대구 미술관으로 나들이를 왔다는 소식에 무작정 차를 몰고 대구로 향했다.
그녀를 만난 곳은 어두운 조명 아래였다. 반쯤 가려진 불빛에 다소곳한 모습으로 나를 바라보는 것 같은 그녀를 보자 반가움에 와락 껴안을 정도였다. 동양의 전통적 미인을 대표하는 신윤복의 미인도는 그렇게 다가왔다. 고전 미인의 특징은 상대방을 정면으로 바라보지 않나 보다. 서양에는 레오나르도다빈치의 모나리자, 조선은 신윤복의 미인도다. 미인도의 여인은 노리개와 옷고름을 살짝 잡고 있다.
무슨 생각을 하는 거지? 궁금증을 유발하는 그녀를 만나기 위해 서두른 여행길은 만족이었다.
미인도가 서울에서 대구로 외출을 했다. 머나먼 여행길에도 아름다움을 잃지 않고 몽환적인 모습으로 관람객을 맞이했다.
조선 미인의 특징은 마늘 같은 코, 앵두 같은 입술, 초승달 같은 눈썹이다. 미인도는 그 특징을 갖추고 있다. 그녀의 눈, 갈색 눈동자는 어디를 보고 있는 것인가? 가을의 바람 소리와 함께 슬며시 우리에게 다가온 미인도를 보기 위해 무작정 떠난 미술관에서, 그녀와의 만남은 짧은 시간이었지만 강렬하게 각인이 되었다.
그동안 미인도는 교과서, 인터넷으로 많이 접근한 그림이라 익숙하지만, 실제 그림을 보는 것은 기대감을 안고 본다. 그런데 줄을 서서 미인도를 보기 때문에 다른 이를 위해 공간을 내주어야 하기 때문이다. 돌아설 때 살짝 고개를 숙인 미인도의 모습이 나를 향해 인사를 하는 것 같다.
미인도 미색의 저고리와 엷은 쑥물을 들인 것 같은 치마로 눈길을 돌리니 살짝 들린 치마 아래로 속곳 바지와 버선이 아름다운 동양의 한복의 선을 만나게 된다.
신윤복의 그림은 많은 이야기를 담고 있다. 월하정인도 그림도 조선의 여성은 주도적이 아니라고 생각할 것이다. 보통 우리가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것은 암탉이 울면 집안이 망한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한국의 여인상 하면 내성적이고 남성 주도적인 삶에 그림자다.
그런데 월하정인도의 그림 속의 여인은 삶에 주도적인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정인을 만나자 얼굴은 한번 뒤로 빼는 모습이지만 그녀의 발은 앞으로 향하고 있다. 바로 혜원 신윤복의 그림은 주는 매력이 발견하면 박장대소가 나온다.
대구에 시립으로 만들어진 간송 미술관에는 모처럼 서울 간송 그림의 나들이에 많은 관람객의 줄은 끊이지 않았다. 기사에 의하면, ‘개관전은 ‘여세동보(與世同寶) 세상 함께 보배 삼아’란 제목으로 국보와 보물급 지정문화유산 40건 97점을 비롯해 모두 157점이 전시 되었다. 특히 한국전쟁 시기를 제외하고 훈민정음 해례본이 서울을 벗어나 전시된 것은 1940년 이후 최초다.
김홍도의 풍속화 신윤복의 화첩이 전시되어 지방 관람객은 모처럼 우리의 옛 그림을 만날 수 있는 시간을 가진 것이다. 특히 미인도와 해례본은 별실을 만들어 관람객을 맞이해 특별한 만남이 이루어진다. 대구 간송 미술관 건물은 지하 1층, 지상 3층으로 자연이 가지고 있는 경사진 지반을 그대로 살려 건물 자체에서 운치가 드러나며 전시관 앞에서 바라보며 물이 있어 외관도 편안한 마음으로 만날 수 있다.
대구 간송 건물은 최문규 연세대 교수의 작품으로 굵직한 소나무 기둥이 11개가 있어 고전의 멋과 현대의 멋이 어우러지는 건축으로 보인다. 외관은 짙은 먹색의 벽돌로 마감해 푸른 하늘과 맞닿은 먹물의 색이 잘 어울린다.
전시실 한쪽은 미디어아트가 전시되어 우리의 그림이 살아 움직이듯 하는 전시를 관람객이 휴식하면서 우리의 옛 그림을 만날 수 있다. 처음 등장하는 그림은 신사임당이 아이들과 함께 노니는 모습을 연상시킨다, 우리의 옛 그림이 시작될 때 한복을 곱게 입은 여인은 쓰개치마를 벗으며 미인도의 여인이 다소곳하게 관객을 향해 인사를 하는 것 같다.
간송 미술관 박석마당에서 바라본 가을 하늘은 깊다. 미술관 소나무 기둥이 11개로 홀수인 것은 관람자가 채우는 미학이 아닌가 싶다. 인간의 그리움이 깊어만 가는 계절에 머나먼 길을 마다하지 않고 나들이를 나온 그녀를 만나고 돌아오는 가을 바람결도 한복의 선 만큼이나 아름다운 게절이다.